[문승필 동지 29주기 묘역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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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대민동 작성일 21-10-18 15:11 조회 833회 댓글 0건본문
일시 : 2021년 10월 9일(토요일) 13:00
장소 :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장소 :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문승필>
92.10.15 (향년 20세)
노태우정권 학생열사
약력
1973년 4월 15일 출생
1990년 3월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입학
동아리 YMCA활동 시작
1990년 6월 그레그 체포결사대로 미문화원 진격 투쟁 시 연행, 훈방
1991년 6월 15일 “폭력만행 민생파탄주범 노태우정권 퇴진 및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 대회” 시위 도중 연행 구속
1991년 8월 27일 집행유예로 출소
1992년 2월 YMCA 회장으로 활동시작
1992년 7월 경찰로부터 계속적인 협박 받음
1992년 10월 15일 새벽 동아리 선배를 만난 이후 귀가 중 행방불명
1992년 11월 2일 광주 보훈병원 영안실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됨
경찰은 단순 열차사고로 처리함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90년 전남대에 입학하여 동아리 YMCA에 가입하였다.
’90년 6월경 ‘그레그 체포결사대 미문화원 진격투쟁’ 중 연행된 후 훈방되었고,
’91년 6월 15일경 ‘ 노태우 정권 퇴진 및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시위 도중에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91년 8월 출소 후 전남대 화학공학과 학회 모임에 적극 참여했으며,
’92년 YMCA회장과 전남대 ‘오월대’ 활동, 8.15 통일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92년 10월 14일 동료들과 헤어진 후 다음날 0시 55분경 경전선 광주역 농장다리 부근 철길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91년 11월경 경찰이 동지에게 프락치 제의를 하였고, 전남대 학생처 직원이 동지에 대해 동향 보고한 사실, 당시 정보형사들이 협조자를 운영한 사실, 전남대학원장회의록, 경찰의 정보보고 등을 종합해 보면 활동과 행적에 대한 공권력 개입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고 지점의 동네주민들이 ‘누군가로부터 쫓기다 죽은 학생’이라는 목격정황이 있는바, 사망 직전에 공안기관의 누군가를 만나서 이들에 의하여 추격을 당하다가 사고지점의 철로에 뛰어들었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공권력의 개입이 되었을 개연성 많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사망사고에 대한 목격자를 찾지 못하였고, 누가, 무슨 목적으로 뒤쫓은 것인지를 특정할 수 없었다.
<현재 상황>
문승필동지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관련자로는 인정을 받았으나 '사망' 인정은 받지 못한 상황이고,
2021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위한 신청을 한 상황입니다.
<참고>
- '민주화운동관련자'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상이를 입은 자,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는 자,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 판결·해직 또는 학사징계를 받은 자 중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자를 말한다 (제2조)
- 국무총리 소속 하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를 둔다(제4조)
-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관련자의 희생의 정도에 따라 보상하되, 그 생활 정도를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제6조)
- 위원회는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30일 이상 구금된 자,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은 자, 재직기간 1년 이상인 해직자 및 그 유족에 대해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제9조).
92.10.15 (향년 20세)
노태우정권 학생열사
약력
1973년 4월 15일 출생
1990년 3월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입학
동아리 YMCA활동 시작
1990년 6월 그레그 체포결사대로 미문화원 진격 투쟁 시 연행, 훈방
1991년 6월 15일 “폭력만행 민생파탄주범 노태우정권 퇴진 및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 대회” 시위 도중 연행 구속
1991년 8월 27일 집행유예로 출소
1992년 2월 YMCA 회장으로 활동시작
1992년 7월 경찰로부터 계속적인 협박 받음
1992년 10월 15일 새벽 동아리 선배를 만난 이후 귀가 중 행방불명
1992년 11월 2일 광주 보훈병원 영안실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됨
경찰은 단순 열차사고로 처리함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90년 전남대에 입학하여 동아리 YMCA에 가입하였다.
’90년 6월경 ‘그레그 체포결사대 미문화원 진격투쟁’ 중 연행된 후 훈방되었고,
’91년 6월 15일경 ‘ 노태우 정권 퇴진 및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시위 도중에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91년 8월 출소 후 전남대 화학공학과 학회 모임에 적극 참여했으며,
’92년 YMCA회장과 전남대 ‘오월대’ 활동, 8.15 통일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92년 10월 14일 동료들과 헤어진 후 다음날 0시 55분경 경전선 광주역 농장다리 부근 철길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91년 11월경 경찰이 동지에게 프락치 제의를 하였고, 전남대 학생처 직원이 동지에 대해 동향 보고한 사실, 당시 정보형사들이 협조자를 운영한 사실, 전남대학원장회의록, 경찰의 정보보고 등을 종합해 보면 활동과 행적에 대한 공권력 개입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고 지점의 동네주민들이 ‘누군가로부터 쫓기다 죽은 학생’이라는 목격정황이 있는바, 사망 직전에 공안기관의 누군가를 만나서 이들에 의하여 추격을 당하다가 사고지점의 철로에 뛰어들었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공권력의 개입이 되었을 개연성 많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사망사고에 대한 목격자를 찾지 못하였고, 누가, 무슨 목적으로 뒤쫓은 것인지를 특정할 수 없었다.
<현재 상황>
문승필동지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관련자로는 인정을 받았으나 '사망' 인정은 받지 못한 상황이고,
2021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위한 신청을 한 상황입니다.
<참고>
- '민주화운동관련자'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상이를 입은 자,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는 자,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 판결·해직 또는 학사징계를 받은 자 중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자를 말한다 (제2조)
- 국무총리 소속 하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를 둔다(제4조)
-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관련자의 희생의 정도에 따라 보상하되, 그 생활 정도를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제6조)
- 위원회는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30일 이상 구금된 자,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은 자, 재직기간 1년 이상인 해직자 및 그 유족에 대해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제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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